위인적풍모에 온넋이 끌려
《나는 수많은 나라 국가수반들을 만나보았지만 만나뵙자마자 그처럼 인차 의사가 통하고 친근감을 느낀분은 오직 김일성주석동지뿐이시다.》
이것은 1975년 여름 유고슬라비아(당시)대통령 찌또가 자기 나라 방문을 마치고 떠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바래워드린 다음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동서방의 수많은 나라 국가수반들,명류인사들과 폭넓은 련계를 가지고있던 찌또대통령이 터친 이 말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였다.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천출위인상에 대한 매혹의 발현이고
그이의 남다른 친화력에서 받은 충격의 토로이며
그이에 대한 두터운 신뢰의 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찌또대통령과의 상봉기간은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그는 이 짧은 기간 우리
수령님과 상봉하면서 누구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특유의 인격과 지성을 체감하였고 화제에 올린 문제마다 깊은 뜻과 심오한 내용을 담아 말씀하시는 출중한 언변과 해박한 지식에서
그이의 비범한 예지와 정치적원숙성을 느꼈으며 뜨겁고 섬세하고 대범하신 성품에서 변치 않는 의리와 사심없는 우정을 체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러한 남다른 인간적향기와 인격적매력은 찌또대통령의 심장을 대번에 끌어당기였으며
수령님과 가까이하고 정을 나누고싶은 충동을 억제할수 없도록 하였다.
그가 불편한 몸이지만 모든 행사들에
위대한 수령님과 동행하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 매일
그이의 숙소를 찾아 체류기일을 연장해주실데 대한 청까지 올린것은 바로 우리
수령님의 위인적풍모에 온넋이 끌리였기때문이였다.
조선말로 부른 《김일성장군의 노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시기 위하여 이 나라의 수도 쟈까르따에 도착하신 1965년 4월 어느날이였다.
수카르노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인도네시아정부에서는 이날 쟈까르따시에 특별휴식을 선포하고 이른아침부터 수십만명의 시민들을 동원하여 성대한 환영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카르노대통령과 함께 이 나라 명예위병대를 사열하신 후 군중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시며 숙소로 향하시던 때였다.이 나라의 독립광장에 이르시자 환영군중들속에서
《김일성수상 만세!》,《조선 만세!》라는 조선말웨침과 함께 조선말로 부르는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격조높이 울려나왔다.한두명도 아니고 수만명이나 되는 군중들이 두 나라 기발과 꽃다발을 흔들면서 목소리를 합쳐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는 광경은 참으로 감격적이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수카르노대통령은 반둥회의 10돐기념행사에 참가한 여러 나라
지도자들을 위하여 마련한 연회에서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주악하게 하였다.그날의 연회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지도자들이 참가한 공식국가연회였다.하지만 수카르노대통령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외교관례를 뛰여넘어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연주하게 함으로써 우리
수령님에 대한 뜨거운 존경과 경모의 정이 연회장에 차넘치게 했던것이다.
참으로 그것은 세계 진보적인류가 우리
수령님을 얼마나 열렬히 경모하였으며
그이께서 지니고계시는 국제적권위가 얼마나 높은가를 보여준 가슴뜨거운 화폭이였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