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조선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및 내각기관지
청춘은 갔어도

내나이 이제는 팔순이 넘었다.

해마다 청년절을 맞을 때면 나는 20대청춘기에 내가 받아안았던 영광을 잊을수 없어 추억속에 종종 그때를 돌이켜보군 한다.

지금으로부터 60여년전에   《함남일보》지면에는 얼음구멍에 빠져 생명이 위급하게 된 7명의 학생들을 구원한 나의 소행이 짤막하게 실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후 나는 꿈만같은 사랑을 받아안게 되였다.

함주군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군중모임에서 내가 공민의 최고영예인 공화국영웅칭호와 함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보내주신 편지와 선물을 한날한시에 전달받은것이였다.

나는 그때 평범한 처녀가 발휘한 자그마한 소행도 영웅적위훈으로 만사람앞에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웅심깊은 사랑에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그때는 천리마시대였다.

기적과 혁신에 대한 소식과 함께 온 나라 곳곳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미덕과 미풍에 대한 이야기가 매일같이 전해졌다.

사경에 처한 한 소년을 위해 자기의 피와 살을 서슴없이 바친 인간사랑의 전설이 태여나고 태풍에 휘말려 떠내려가던 조난선을 목숨바쳐 구원한 청년들의 영웅적소행이 전해지는가 하면 당의 부름따라 청년들이 산으로, 바다로, 전야로 달려나가는것이 례사로운 일로 여겨지던 말그대로 하루하루가 청년들이 발휘하는 미덕과 위훈으로 가득찬 나날이였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이름없던 한 처녀의 소행을 그토록 높이 내세워주시고 나를 원형으로 한 연극이 창작되였을 때에는 친히 극장에까지 나오시여 자신의 몸가까이에 불러주시였다.

그날 나는 감격에 목이 메여 감사의 인사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그이의 자애로운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울었다.

그러는 나를 한품에 안으시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생토록 잊지 못할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그후 제가 어느한 대회에 참가하였을 때에도, 경축행사장에서 꽃다발을 드리였을 때에도 그이께서는 앓지 말고 일을 잘하여야 한다고 친부모의 심정으로 념려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도 언제나 나를 잊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광의 단상에 내세워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연극 《아침노을》을 보시고 이 연극의 주인공은 인간을 사랑하는 정신이 높으며 검박하고 락천적이며 혁명과업수행에서 헌신적이라고,공산주의적인 인간은 바로 그래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수십년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나를 잊지 않고 계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더 큰 일을 하라고 인민경제대학에서 공부하도록 해주시고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 해인 주체100(2011)년에는 나의 70번째생일상까지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인생의 황혼기에도 나의 삶에는 언제나 밝은 빛이 넘쳐흘렀다.

나라에서는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에 일흔이 지난 나를 대표로 불러주고 대회참가자들앞에서 20대청춘시절에 받아안은 영광을 추억깊이 토로하도록 연단에 내세워주었다.

어찌 그뿐이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몸가까이 모시고 당중앙뜨락에서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도 지니였고 총비서동지께서 보내주신 은정어린 80번째 생일상을 받아안는 행복도 지니였다.

참으로 나는 누구나 바라면서도 쉽게 누릴수 없는 만복을 한몸에 다 받아안은 사람이다.

하기에 나를 보고 여든이 지난 나이에도 여전히 열정과 패기가 넘쳐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군 한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품속에서 씩씩하고 기특하게 성장하는 우리 청년들을 볼 때면 청춘은 갔어도 다시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 창창한 청년강국의 기틀을 세우는데 한몸 바칠 결의가 더욱 굳어집니다.그 마음속 결의가 언제나 나에게 새힘과 열정을 안겨주군 합니다.》

평천구역출판물보급소 소장 공화국영웅 김정순

저작권 2024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주조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