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고난의 행군시기 혁명령도의 길에서 여러 차례나 찾아주시였던 감나무중대에서 병사생활의 첫 걸음을 떼고 지휘관으로 성장한 군인들중의 한 사람입니다.
내가
위대한 장군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것은 인민군대에 입대한지 불과 2년반만인 주체84(1995)년 2월 이였습니다.
그날따라 날씨는 몹시 춥고 바다바람은 무던히도 세찼습니다.
게다가 덮칠듯이 밀려오는 파도로 하여 방파제우에 우박같이 굵은 물방울이 마구 휘뿌려져 길우에는 살얼음이 깔려있었습니다.
이렇게 험한 날씨와 궂은 길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 중대를 몸소 찾아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중대의 이르는 곳마다에 사랑의 자욱을 수놓으시였습니다.
우리 녀성해안포병들이 진행하는 훈련을 보아주시고 잘한다고,아주 잘한다고 못내 대견해하시고 중대식당에 들리시여서는 부식물가공과 급식형편을 료해하시면서 녀성군인들의 식생활을 따뜻이 돌봐줄데 대하여 간곡히 당부하시였으며 중대예술소조공연도 보아주시고 우리 중대군인모두를 사랑의 한품에 안아 영광의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습니다.
그날 우리들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져있는 자동보총과 쌍안경을 안겨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떠나시기에 앞서 조국의 최전방초소를 동무들에게 맡긴다고,해안포중대는 해군과 같으므로 수영훈련을 잘하여 포탄을 안고 육박할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후에 수영훈련을 꼭 판정하시겠다는 사랑의 약속을 남기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실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포사격훈련과 수영훈련에 열중하고있던 우리들은 그해의 뜻깊은 청년절에 또다시
위대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배를 타고 해상훈련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가 잊을수 없는 그날에 올랐던 배가 오늘도
금수산태양궁전에 정히 보존되여있습니다.
그날 먼저 중대예술소조공연을 진행하려고 흰색운동복차림으로 갑판우에 정렬해선 우리들을
자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마치 선녀들 같다고 하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그 말씀에 나는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군관,장령들이 우리를 녀장부로 칭찬한적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우리의 모습을 두고 선녀같다고 한적은 없었습니다.
오직 우리 녀성군인들을 자신의 친딸로 여기시는 우리
장군님께서만이 그처럼 사랑과 정이 담긴 말씀을 하실수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그날
위대한 장군님앞에서 울고 웃으며 부른 감격의 노래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500m 전구간에 대한 수영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들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며 한명의 락오자도 없이 훈련을 잘한 동무들에게 감사를 준다고 하시며 우리들의 훈련성과를 높이 평가해주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그날의
자애로운 음성이 지금도 쟁쟁히 울려오는것만 같습니다.
만세의 함성을 터쳐올리는 우리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고 또다시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고 다심한
어버이사랑으로 음식상까지 차려주시며 수영을 하고나면 배가 고픈데 많이들 들라고 사랑에 사랑을 더해주시던
위대한 장군님,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머나먼 혁명령도의 길을 떠나시였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령장의 사랑속에 우리 감나무중대에는 수많은 혁명일화들이 수놓아지게 되였고 우리 병사들은 화려한 옷보다 땀배인 군복을 더 사랑하고 긍지로 여기는 화선병사들로 억세게 자라게 되였습니다.
인민군전사들을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과 믿음이 있어 우리 감나무중대의 병사들만이 아닌 이 나라의 총쥔 병사들 모두가 보람찬 군무생활의 나날을 충성과 위훈으로 빛내여올수 있은것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세월이 흘러 내 나이 50을 가까이합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감나무중대에서 보낸 청춘시절을 즐겁게 추억하군 합니다.
그럴 때면 사상도,인품도,덕망도 우리의
위대한 장군님과 꼭 같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받들어 영원히 감나무중대의 병사로 살 마음속결의를 더 굳게 가다듬군 합니다.
동대원구역 동신3동 사무장 김정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