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조선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및 내각기관지
우리는 승리할 조국의 래일을 락관하며 싸워이겼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1950년대에 전승세대가 세운 특출한 위훈과 후대들에게 남긴 정신적재부와 유산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고귀한것으로 깊이 간직되고있습니다.》

1950년대의 조국방위자들은 그처럼 간고한 시련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한 반드시 승리한다는 필승의 신념과 혁명적락관주의를 가슴마다에 새겨안고 사소한 비관과 동요도 없이 혁명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원쑤들을 족치였다.

 

싸우는 고지들에서 태여난 화선악기

 

전승세대가 발휘한 혁명적락관주의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에게 제일먼저 떠오르는것은 인류예술사의 한페지를 자랑스럽게 장식한 영웅조선의 악기,화선악기이다.

화선악기의 력사는 최고사령부의 전략적의도에 따라 인민군대가 적극적인 진지방어전으로 이행한 시기에 시작되였다.

주체40(1951)년 4월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군인들에게 혁명적인 노래와 춤도 많이 배워주어야 한다고,그리하여 우리 인민군군인들이 지켜선 조국의 모든 고지와 해안초소들에서 원쑤들을 전률케 하는 전투적인 노래가 울려퍼지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그러시면서 지난날 항일유격대원들이 그처럼 간고하고 엄혹한 시련을 이겨내고 조국해방을 이룩할수 있은것은 그들이 필승의 신념과 혁명적락관주의정신을 가지고 싸웠기때문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에 접한 1211고지와 박달령계선의 인민군전사들은 화선악기제작에 달라붙었다.

제3군단장이였던 항일혁명투사 류경수동지는 솔선 전사들의 화선오락회에 참가하여 그들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류례없이 간고한 환경에서도 예술활동을 활발히 벌린 항일유격대원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특히 간삼봉전투에서 일제의 대병력이 악착스럽게 달려들 때 노래를 우렁차게 불러 적들을 당황케 하고 무리죽음을 주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날 악기를 제작하고있는 몇몇 군인들을 부른 그는 자기가 사용하던 지휘부의 작전탁과 의자도 서슴없이 내여주면서 동무들이 만든 화선악기로 대연주회를 준비해가지고 최고사령관동지께 보고드리자고 뜨겁게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되여 박달령에서의 화선악기제작사업은 더 활발히 진행되였다.

박달령의 용사들은 처음에는 타악기들과 죽관악기들을 제작하였으며 점차 기술공정이 복잡한 현악기들까지 제작하였다.그리하여 마치 악기공장을 차려놓은듯 단소,저대,피리,새납,장고,가야금,기타,바이올린,첼로 등 수많은 악기들을 제작하였으며 다른 구분대들에까지 보내주었다.

1211고지의 용사들도 여러가지 화선악기들을 만들었다.

1951년 가을 미제는 1211고지를 점령하지 않고서는 《추기공세》의 목적을 달성할수 없었기때문에 수많은 비행대,포,땅크의 지원밑에 매일 발악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그것은 중대를 들이밀었다가 녹아나면 대대를,대대가 꺾이면 련대를 투입하는 식의 파도식공격이였다.

원쑤들이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려고 각종 살인장비들을 끌어들일 때 고지마다에서는 인민군용사들이 직접 만든 화선악기의 노래포성이 울려 원쑤들을 전률시켰다.

당시 어느한 신문에는 인민군용사들이 보내는 전선의 밤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음악연주의 밤〉은 실로 다채롭다.그 첫머리에 화선악대들이 등장한다.오동나무를 켜서 만들고 전화선과 명주실오리를 가공한 1번―4번선까지 음조정확한 바이올린,첼로,6번선까지의 기타와 퉁소,피리 등 화선악기의 합주는 화선에서뿐 아니라 멀리 후방에서도 절찬을 받고있다.

…우렁찬 노래소리는 갱도를 흘러 적진에로 울려퍼진다.적진에서 이어 포성이 울렸다.그러나 우리 병사들의 돌격을 막아내지 못하는것처럼 그 우렁찬 합창을 포성은 막지 못하였다.》 

싸우는 고지우에 높이 울리던 화선악기의 선률,그것은 인민군용사들에게는 승리의 신심을 북돋아주는 뢰성이였고 원쑤들에게는 무서운 철추를 안기는 멸적의 포성이였다.

정녕 화선악기,그것은 영웅적조선인민군만이 창조하여 후대들에게 물려줄수 있는 전승의 고귀한 유산이였다.

 

전선과 후방에서 널리 불리워진 전시가요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창작된 전시가요들은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가 무비의 용감성과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하게 한 또 하나의 사상정신적무기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 인민과 인민군용사들이 즐겨부른 전시가요들중에는 《조국보위의 노래》도 있다.

1950년 6월 미제가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도발하였다는 소식에 접한 온 나라의 방방곡곡에서는 삽시에 분노의 목소리들이 터져나왔고 그것은 곧 전선탄원의 열망으로 바뀌였으며 어디서나 《조국보위의 노래》가 조국수호의 대합창곡으로 울려퍼졌다.

전쟁이 일어난지 며칠만에 전선에 탄원한 청년들의 수가 74만명을 넘었다는 하나의 사실자료만 놓고서도 전화의 나날 이 전시가요가 얼마나 비상한 견인력을 발휘했는가를 감득할수 있다.

전쟁발발후 며칠만에 창작된 전시가요 《진군 또 진군》은 우리 인민군대의 영웅적인 진군기상과 원쑤 미제에 대한 치솟는 분노,서리발치는 보복의지가 응축되여있는것으로 하여 전쟁 첫 시기부터 진격하는 인민군용사들에게 천백배의 힘과 용기를 더해주었고 이 진군가의 합창이 멸적의 포성마냥 울려퍼지는 곳마다에서는 미제의 《상승사단》도,그 어떤 《난공불락의 요새》도 물먹은 담벽처럼 허물어지군 하였다.

지금도 우리 인민이 즐겨부르는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가 창작되게 된데는 1211고지용사들과 깊은 인연이 있다. 

종군의 길을 이어가던 창작가들이 찾은 1211고지는 말그대로 불타는 고지였다.사방에서 작렬하는 적의 포탄과 해빛마저 가리우는 자욱한 포연,하루에도 수십차례씩 벌어지는 전투…

그속에서 우리의 영웅전사들은 탄알이 떨어지면 수류탄으로,그것마저 떨어지면 공병삽과 부서진 바위로,나중에는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원쑤들을 족치고있었다.죽음도 두려움없이 싸우는 그들의 가슴마다에 나서자란 고향산천과 부모처자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뜨겁게 간직되여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포부가 얼마나 소중한것인가를 창작가들은 불타는 고지의 전호속에서 새기게 되였다.

치렬한 전투가 끝난 후이면 해방된 이듬해에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신 땅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리던 일이며 사랑하는 처자와 함께 밭갈이하던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전사들,동무들과 함께 학교로 가던 꿈같은 나날을 추억깊이 돌이켜보는 애젊은 병사들,고향에 계시는 부모들에게 자기의 소식을 꼭 전해달라며 가슴에 품고있던 훈장을 꺼내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창작가들에게 전쟁의 폭음도 짓누를만큼 강렬한 서정의 세계를 펼쳐주었다.

고난속에서 웃는 모습,시련과 난관속에서도 밝은 래일을 굳게 믿는 전화의 용사들의 모습이 바로 유명한 전시가요의 창작동기로 된것이였다.

후방의 인민들도 《우리 님 영웅되셨네》,《샘물터에서》,《얼룩소야 어서 가자》를 비롯한 전시가요들을 부르며 적기들의 야만적인 폭격속에서도 인민군대원호사업과 전시생산투쟁들을 중단없이 벌려 전쟁승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창작된 전시가요들은 투쟁속에 전진하는 혁명의 년대기들마다에 더 높이 부를 영원한 승리자들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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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포성이 멎은 때로부터 장장 70여년세월이 흘렀다.그러나 전승세대가 지니였던 특출한 위훈과 고귀한 혁명정신은 조국청사에 금문자로 아로새겨졌으며 세대와 세대를 이어 끝없이 이어지고있다.

모든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가장 큰 국난에 직면하여 가장 큰 용기를 발휘하며 가장 큰 승리와 영예를 안아온 전승세대의 후손들답게 1950년대 조국수호정신을 백배하며 우리 국가의 전면적발전기를 힘차게 열어나가야 할것이다.

본사기자  정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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