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조선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및 내각기관지
한평생을 하루와 같이

반영자료를 보시면서도

 

수십년전 어느날에 있은 일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날도 밤깊도록 문건을 검토하고계시였다.그이께서 하루밤만이라도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일군은 우리 나라를 방문한 어느한 나라 대표단의 반영자료를 올리였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나라 국가수반은 1년에 한두번 국가행사에나 나타나고는 휴양지에 가있기때문에 우리 정부성원들도 좀처럼 그를 만나보기가 어렵다.

우리는 쌓아올리신 공적으로 보나 년세로 보아 김일성주석께서도 응당 쉬시면서 사업하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영자료를 다 보고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그 나라 국가수반은 어떻게 일하는지 알수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일할수 없다고 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일군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수령님,밤이 퍽 깊었습니다.》라고 말씀올리였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없다고,산에서 싸울 때부터 늘 잠을 적게 자다보니 이제는 버릇이 되여서 피곤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그러시고는 그날 밤을 사업으로 밝히시였다.

 

그이의 소원

 

어느해 여름날이였다.

밤은 깊어가건만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에서는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이제나저제나 안타까운 심정을 안고 기다리던 일군은 그이께서 계시는 방으로 들어가 《수령님,밤이 퍽 깊었습니다.》라고 말씀올리였다.

그제서야 보시던 문건에서 눈길을 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흔연하신 어조로 래일회의에서는 당과류와 기름생산문제를 보자고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은 또다시 치밀어오르는 격정을 애써 누르며 《수령님,밤이 새고 이제는 새날이 밝았습니다.》라고 거듭 말씀올리였다.

잠시 아무 말씀 없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신의 평생에 우리 아이들과 인민들에게 사탕과 기름을 넉넉히 먹이는것이 소원이라고 자신의 심정을 터놓으시였다.

이렇게 인민을 위해 한밤을 꼬박 지새우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다음날 식료공업부문 일군협의회에서 사탕과 기름생산을 늘여 인민들에게 공급해줄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생신날을 앞둔 밤에

 

주체66(1977)년 4월 14일이였다.

그즈음 개천,안주지구를 현지지도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날 밤도 석탄생산때문에 마음쓰시는것이 너무도 안타까와 일군은 그이께 이제는 그만 주무셔야 하지 않겠는가고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석탄걱정때문에 잠을 이룰수가 없다고 하시면서 아무래도 자신께서 막장에 들어가 석탄을 좀 캐보아야 할것 같다고 하시는것이였다.

일군은 충격이 컸다.

석탄생산을 두고 얼마나 심려가 크시였으면 우리 수령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랴.

이윽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래,마음뿐이지 이제는 안되지라고 하시고는 내 나이 한 10년만 젊었어도 막장에 들어가 탄을 꽝꽝 캐보겠는데라고 혼자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일군이 격정을 금치 못하며 래일은 어버이수령님의 생신날인데 이렇게 밤잠도 주무시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는가고 간절히 말씀올렸건만 우리 수령님께서는 온 나라 인민을 남부럽지 않게 잘살게 해야 할 무거운 임무가 자신의 어깨우에 놓여있다고 하시며 다시금 일손을 잡으시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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