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언제 한번 편히 쉬지 못하시고 팔순이 넘은 고령에도 공장과 농촌을 찾아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였다.》
백미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려는 우리 인민의 세기적숙망을 실현하는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의 념원이였다.
사랑하는 인민들에게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시려는 불같은 소원을 안으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평생 포전길을 걷고 또 걸으시였다.
주체83(1994)년 6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온천군 금당협동농장(당시)을 찾으시였을 때이다.
그날은 일요일이였다.
서해의 세찬 바람이 먼지를 휘몰아올리며 기승을 부리는 험한 날씨에 팔순이 넘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포전길에 계시는것이 너무도 죄송스러워 한 일군이 이렇게 바람세찬 날씨에 험한 길을 걸으시면 어떻게 하시는가고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없다고,인민들이 잘살게 되면 그 어떤 험한 길도 얼마든지 걸을수 있다고 하시며 환히 웃으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디 강냉이밭을 좀 보자고 하시면서 천천히 포전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때 길옆의 포전에서는 푸르싱싱한 강냉이들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큰 잎을 흔들어대고있었다.
한손을 허리에 얹으시고 그 전경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냉이가 참 잘되였다고 하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한동안 강냉이밭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냉이 정보당 예상수확고에 대하여 알아보시고 농사를 아주 잘했다고,다른데서도 다 여기처럼 농사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그러시고는 동행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강냉이초기작황이 이렇게 좋은것만큼 이제는 가물만 이겨내면 된다고 하시면서 밭관개정형을 알아보시였다.
그러느라니 시간이 퍼그나 흘러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어 어떤 때는 숨이 다 막히는듯하였다.
수행원들이 바람이 사나운데 이젠 그만 돌아가시자고 몇번이나 말씀올리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바람을 많이 맞아야 풍년가을을 본다고 하시며 포전길을 계속 걸으시였다.
이때 한 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로 농사가 이렇게 잘되였는데 이제는 험한 논두렁길을 더는 걷지
마시라고,장군님을 받들어 농사를 잘 짓겠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일군을 정겹게 바라보시며
김정일동지를 받들어 농사를 잘해야 한다고,동무들이 일을 잘해서
김정일동지를 험한 논두렁길을 걷지 않게 해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인민들을 배불리 먹이려는 간절한 소원을 푸실 때까지 농민들과 함께 영원히 포전에 계시겠다고 하시며 혁명생애의 마지막시기에도 포전길을 걸으신
위대한 수령님.
정녕 해방된 조국땅에서 처음으로 모를 내본다고 하시며 논에 들어서시여 한포기 또 한포기 정성껏 모를 내시던 미림벌의 봄날로부터 전화의 불비속에서 농민들과 함께 씨앗을 묻어나가시던 원화벌의 새벽,전후의 첫 생신날도 농민들과 함께 보내신 중화벌의 못잊을 추억을 넘어 청산리와 리현리,연백벌과 금당벌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의 포전들에 새겨가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의 자욱마다에는 우리 인민들이 잘 먹고 행복하게 살게 하시려는 숭고한 일념이 어려있었다.
한평생 인민들의 먹는 문제해결을 위해 포전길을 걷고걸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전하며 7월의 사회주의전야는 뜨겁게 설레이고있다.
본사기자 조 은 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