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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꼼뮨의 산아 《인터나쇼날》

자본의 철쇄를 짓부시고 착취와 압박이 없는 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로동계급과 피압박인민대중의 혁명투쟁을 호소한 전투적인 가요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있는 《인터나쇼날》은 1871년 프랑스에서 창작되였다.

빠리꼼뮨의 투사이며 꼼뮨위원회 위원이였던 에젠 뽀찌에에 의해 창작된 가사는 어느 한 작곡가에 의해 곡이 붙여져 가요 《인터나쇼날》로 완성되였다.

1871년 프랑스의 빠리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로동계급의 혁명주권인 꼼뮨이 선포되였다.로동계급의 혁명적진출이 강화되는것을 극도로 두려워한 프랑스반동당국은 외세와 야합하여 꼼뮨성원들과 혁명적군중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사방에서 포탄이 터졌고 련이어 총탄이 날아들었다.에젠 뽀찌에는 이 류혈의 총성을 들으며 심장의 붉은 피로 로동계급을 비롯한 피압박인민들을 투쟁에로 부르는 시를 썼다.

그는 날아드는 총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리케드의 높은 곳에 우뚝 서서 로동자들과 시민들을 고무하는 불같은 연설도 하였다.

꼼뮨투사들을 선두로 한 로동자들과 시민들이 치렬한 격전을 벌리며 여러차례 적들의 공격을 물리쳤지만 투쟁은 실패로 끝나고말았으며 반동정부군의 류혈적인 탄압에 의해 꼼뮨은 70여일밖에 존재하지 못하였다.

에젠 뽀찌에도 한쪽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졌다.전우들의 도움으로 빠리교외에 은신한 그는 꼼뮨성원들에 대한 원쑤들의 체포,구금,학살이 살벌하게 벌어지는 엄혹한 시기에도 비관하지 않고 붓을 들어 신념의 노래를 지었다.

이렇게 되여 국제로동계급의 단결의 송가로 널리 알려진 《인터나쇼날》이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

자본의 착취와 예속에서 해방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압박을 없애려는 근로인민대중의 사상감정을 높은 예술적경지에서 반영한것으로 하여 《인터나쇼날》은 세계적범위에서 널리 불리워지면서 자주성을 지향하는 근로대중의 단결과 투쟁,련대성의 상징으로 되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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