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부모들이 지어준 이름이 있다.
그 이름마다에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기대와 소중한 의미가 실려있다.
모란봉구역 비파1동 30인민반에 사는 한 녀성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 녀성의 이름은 문해방.
그의 생은 조국이 해방된 이듬해부터 시작되였다.
이를테면 해방동이인셈이다.
해방의 열파로 온 나라가 끓어번지던 그때 고고성을 터친 그에게 부모들은 해방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다.
여기에는 참으로 뜻깊은 의미가 담겨져있었다.
그의 어머니인 최탄실녀성은 해방된 그해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을 환영하는 평양시군중대회장에서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꽃다발을 드린 해방조선의 첫 꽃다발주인공이다.
칠성판에 오른 겨레의 운명을 구원하시고 조국해방의 거대한 업적을 이룩하신 절세의
위인께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삼가 엮은 꽃다발을 드린 그날의 영광을 두고두고 새겨주고싶어,해방이라는 거대한 사변과 더불어 이 땅의 후손들의 삶이 해방동이의 복된 삶으로 꽃펴나기를 축복하며 최탄실녀성은 태여난 딸의 이름을 해방이라고 지었다.
그렇게 시작된 생이였다.
조국이 있고서야 가정도 행복도 있다는 철리,조국의 귀중함을 한평생 잊지 말고 한없이 소중한 조국을 위해 한몸 다바치기를 기원한 부모들의 그 소망대로 문해방녀성은 애국의 자욱자욱을 삶의 궤도우에 수놓아왔다.
조국보위초소에서 복무의 나날을 보내는 남편의 뒤바라지를 하느라 부담이 적지 않았어도 그것을 인생의 락으로 여겼고 두 아들을 떳떳하게 키워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웠다.
남편도 자식들도 조국보위의 초소에 선 후방가족어머니가 그후에는 원군어머니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소박한 지성이 담긴 원호물자들을 안고 인민군군인들을 찾아 조국보위초소로,사회주의건설장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끝이 없었다.
비단 원군의 길만이 아니였다.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사회주의건설장들마다에도 그의 애국의 자욱이 무수히 찍혀졌다.
오늘 문해방녀성의 집을 찾는 사람들은 가정에 보관되여있는 지원일지며 지원증서들을 보고 무척 깊은 감동을 받고있다.
그것을 통해 이 나라의 한 공민이 걸어온 애국의 자욱을 더듬어본다.
이제는 여든을 가까이 한 나이에 이르렀어도 문해방녀성은 변함없이 나라를 위한 길에 진정을 바쳐가고있다.
어제날의 해방동이의 그 모습에서 우리의 새세대들은 공민의 애국적삶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새겨안는다.
글 본사기자 엄 영 철
사진 본사기자 정 성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