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조선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및 내각기관지
불패의 혁명강군―항일빨찌산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갈피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은 단순한 군사집단이 아니라 정치와 군사를 다같이 중시하는 혁명군대입니다.》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될 당시의 인원수는 불과 100여명밖에 되지 않았다.이런 무장대오가 어떻게 100만의 일본관동군,비행기와 땅크와 같은 현대적무기로 장비한 정예무력에 파렬구를 내며 조국해방의 종소리를 높이 울릴수 있었는가.

우리는 이에 대한 대답을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찾는다.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

 

주체25(1936)년 여름 구국군 부대장이였던 만순이 위대한 수령님께 이런 질문을 제기한적이 있었다.

그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여러 전투에서 거둔 성과를 몹시 부러워하면서 저 멀리 춘추전국시대로부터 중국명장들은 지략으로 이기고 일본사람들은 호전성으로 싸움을 하는데 김사령은 도대체 어떤 전법으로 싸우기에 련전련승하는가고 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전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군인들의 정신상태라고 말씀해주시였다.

항일유격대의 사상정신상태가 항일대전의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고 확신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장투쟁초기부터 대원들모두를 열렬한 애국심과 불굴의 신념,굳센 의지를 지닌 사상과 신념의 강자들로,담대한 배짱가들로 키우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성장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수령결사옹위의 기치를 높이 들고 혁명의 사령부의 안전을 위해 날아오는 적탄도 한몸으로 막아나섰으며 사령부로 가장하고 수천의 적을 뒤에 달고다니며 족쳐댔다.《조선혁명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며 적의 화구를 몸으로 막아 부대의 돌격로를 개척하고 세계혁명전쟁사에서 첫 육탄영웅으로 기록된것도 조선의 항일투사였다.적들의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스스로 자기의 혀를 끊으며 혁명적지조를 지키고 두눈을 빼앗기고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웨친 항일투사들,기어이 살아 원쑤를 치기 위해 혁명가요를 부르며 썩어들어가는 자기의 발을 양철톱으로 스스로 자른 이런 불굴의 혁명투사들이 백두산에서 살며 싸웠다.

 

혁명적의리로 뭉쳐진 집단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6권에 수록된 《혁명적의리에 대한 생각》에는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녔던 순결한 혁명적의리에 대한 내용이 있다.

고난의 행군때 있은 일이다. 한 신입대원이 어느날 밤 우등불곁에서 자다가 군복을 태웠는데 어떻게 심하게 탔는지 살을 절반도 가리우지 못하였다.그런 옷을 입고 신입대원은 행군 첫날부터 우들우들 떨면서 대오를 따라갔다.

동지애가 강하였던 리을설동지는 신입대원이 당하는 고통을 보다 못해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군복저고리를 벗어들고 그 대원을 찾아갔다.그리고는 불에 탄 옷을 강짜로 벗기고 그에게 자기의 군복을 입히였다.

전우들은 모두 리을설동지가 그 겨울을 견뎌내기 힘들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리을설동지는 춥다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고 행군할 때마다 앞장에서 생눈을 헤치였다.숙영지에서는 언제나 선참으로 나무를 해오고 천막을 쳤으며 기관총반의 일을 다하고 전우들이 우등불가에 둘러앉은 다음에야 불에 자기의 신발을 말리우군 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누구나가 다 리을설동지와 같이 동지들을 제일로 사랑하고 동지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은 혁명적의리의 소유자들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왜 강했는가,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자신께서는 의리로 뭉쳐진 집단이였기때문이라는 대답을 하군 한다고,우리의 단결이 도덕과 의리에 바탕을 두지 않고 순수 사상의지의 공통성만으로 이루어진것이였다면 우리는 그처럼 강할수 없었을것이라고 쓰시였다.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비관을 모른 락천가들

 

주체29(1940)년 봄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백두산동북부일대에서 맹렬한 군사정치활동을 벌릴 때에 있은 일이다.

당시 부대는 어려운 식량난을 겪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날 한 지휘관에게 대원들을 데리고가서 산나물을 뜯어오라는 명령을 주시였다.

그런데 나물을 뜯으러 산에 올랐던 대원들은 저녁녘에야 돌아왔는데 나물은 한바구니도 채 못되였다.

사연인즉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꽃향기가 진동하는데다가 폭신폭신한 잔디밭을 보니 고향생각이 절로 나고 봄동산에서 즐겁게 뛰놀던 어릴적생각이 나서 저도 모르게 씨름으로 한나절을 보내게 되였다는것이였다.

그들에게 주의처분을 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밤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다.

저도 모르게 씨름판을 벌렸다는 나어린 대원들,자기의 위치도 잊고 손벽까지 쳐가며 부추겼다는 지휘관…

비록 바구니는 채워오지 못했지만 씨름에 옴해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그려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험한 판국에서도 비관을 모르고 배포유하게 씨름까지 해가며 락천적으로 생활하는 대원들이 더없이 미더우시였다.

사실 그들에게 정신적여유나 생활에 대한 락관이 없었더라면 그처럼 어려운 정황속에서 씨름같은것을 생각하지 못하였을것이다.

미래를 락관하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같은 이런 강자들만이 노래와 춤,체육경기로 흥성이는 군민련환오락회와 운동회도 자주 벌리고 식량이 떨어지면 가재나 개구리를 잡아 때식을 이으면서도 해방된 조국의 래일을 그려보며 락천적으로 생활한것이 아니랴.

끊임없는 전투와 행군의 여가마다 진행된 혁명가요의 창작과 보급,혁명연극창조와 공연,전투를 끝내거나 자그마한 농촌마을이나 목재소를 지나면서도 빠짐없이 진행하군 한 연예공연들은 오직 미래에 대한 락관을 지닌 조선인민혁명군만이 창조할수 있는 화폭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은 동서고금에 없는 락천가들의 집단이였다고,세계에 이름난 군대도 많고 빨찌산도 많았지만 조선인민혁명군만큼 혁명적랑만과 열정으로 약동하는 생기발랄하고 전도가 양양한 군대는 없었을것이라고 회고하신것처럼 조국진군의 앞길에 가로놓인 역경을 웃음으로 다스리고 화를 복으로 전환시키는 사람들,이 세상이 통채로 꺼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믿는 락천가들의 집단이 바로 조선인민혁명군이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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