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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 해선리에서 고려 25대 경효(충렬)왕릉 새로 발굴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와 문화성 민족유산보호국 조선민족유산보존사,송도사범대학의 학술집단이 개성시 해선리의 명릉동골안에서 고려왕릉으로 볼수 있는 벽화무덤을 새로 발굴하고 이 무덤의 주인공을 밝혀내는 귀중한 고고학적성과를 거두었다.

이번에 새로 발굴된 무덤은 개성시 해선리에 솟아있는 만수산줄기에서 남쪽으로 갈라져나온 산릉선의 중턱에 위치하고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다른 릉선들에 의해 둘러막혀있어 아늑한 감을 주고있으며 무덤앞으로는 명릉천이라고 불리우는 자그마한 개울이 흐르고있어 중세시기에 널리 통용되던 《지리풍수설》에 부합되는 곳이라고 할수 있다.

이 무덤에서 반경 3~4㎞범위에는 고려태조 왕건왕릉,8대왕 현종의 무덤인 선릉,9대왕 덕종의 무덤인 숙릉,10대왕 정종의 무덤인 주릉,31대 경효(공민)왕의 무덤을 비롯하여 고려시기의 왕릉들이 많이 분포되여있다.

이 무덤의 무덤구역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온 릉선의 경사면에 남북길이 40m,동서너비 18m정도되게 형성되여있으며 동서방향으로 길게 쌓아놓은 화강석축대들에 의하여 네개의 구획으로 나뉘여져있다.

무덤구역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있는 제1구획의 중심에는 무덤무지와 돌란간시설이 설치되여있으며 그앞에 망주석이 세워져있다.현재 무덤무지앞의 좌우에 놓여있던 망주석가운데서 동쪽의것은 없어지고 서쪽의것만이 남아있다.

제2구획의 북쪽부분 중심에는 상돌이 있고 그 좌우에 문관복차림의 돌사람상이 한상씩 세워져있었으나 현재 동쪽의것만 남아있다.

제3구획의 좌우에도 돌사람상이 한상씩 세워져있었으나 발굴당시 동쪽에 놓였던 돌사람상만이 머리와 다리부분이 깨여진채로 땅에 묻혀있었는데 그 형상수법과 크기는 제2구획의 서쪽 돌사람상과 거의 같다고 볼수 있다.

제4구획에는 원래 제당이 설치되여있었으나 현재 후세에 만든 여러기의 무덤들이 자리잡고있다.

이 무덤은 무덤칸이 지하에 만들어진 외칸으로 된 돌칸흙무덤으로서 방향은 남향이며 무덤칸의 크기는 남북길이 365㎝,동서너비 300㎝,높이 235㎝이다.

무덤칸의 동벽과 서벽,북벽은 잘 가공된 화강석판돌을 5층으로 쌓아 만들었다.

동벽에서 주목되는것은 네번째 층의 중간부분에 너비 40㎝,높이 48㎝,깊이 25㎝되는 구멍이 뚫어져있는데 이 구멍은 고려 31대 경효(공민)왕의 무덤인 현릉의 동벽에 나있는 구멍과 같은 의미를 담고있는것으로서 안해의 《혼》과 통하는 문이라고 할수 있다.

서벽과 북벽의 축조상태는 동벽과 거의 비슷한데 동벽의 가운데부분에 있는것과 같은 구멍은 없다.

발굴과정에 검은색의 선무늬들이 그려진 회벽쪼각들이 발견되여 이 무덤이 벽화무덤이였다는것을 명백히 알수 있게 되였다.

무덤에서는 봉건시기 왕이나 왕비에게 존호를 올릴 때 리용되는 옥책의 일부분과 금도금한 철제품,벽화쪼각을 비롯한 여러가지 유물들이 나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고고학학회에서는 이번에 발굴된 무덤의 건축형식과 규모,유물들,《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옛 문헌기록들을 분석한데 기초하여 이 무덤을 고려 25대왕이였던 경효(충렬)왕의 릉으로 볼수 있다는데 대하여 일치하게 인정하였다.

이번에 고려 25대왕인 경효(충렬)왕의 무덤인 경릉이 발굴고증된것은 고려후반기 왕릉제도와 고려도자 및 금속가공기술연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 룡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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